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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간에 담긴 콘텐츠의 진정성
  • 공간 디자이너 김종호의 디자인 트렌드 4

김종호 디자이너
의미와 개념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통해 스타일만 추구하는디자인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의 트렌드를 반영한 성숙한 디자인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김종호 디자이너의 목표이자 디자인스튜디오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다양한 마케팅 분석을 통해 트렌드의 변화를 이해하고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며, 규정되지 않은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건축과 인테리어 영역을 넘나들며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와 포스코 더 샵, 인터콘티넨탈 사이공, GT타워, 보리호텔 등 국내 유명 건축물 외에도 베트남과 마카오, 하와이 등 해외 프로젝트도 다수 수행했다.
www.design-studio.co.kr


소비자와 브랜드의 교차점. 바로 상업 공간이라고 부르는 ‘매장’이다. 단일 브랜드를 진열해두고 판매하는 곳도 있고, 여러 브랜드의 물건을 한곳에서 볼 수 있게끔 모아둔 숍도 있다. 음식점, 카페, 백화점, 식당 등 판매하는 방식과 아이템도 다양한 상업 공간.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하나 둘 생겼다가 사라지는 매장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역사를 이어온 매장, 그리고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매장이 눈에 띈다. 이런 곳에는 어떠한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인테리어 전에 콘텐츠의 정체성을 먼저 잡아라
“상업 공간은 그 목적이 한 가지예요. 바로 ‘판매’죠. 음식이건, 생필품이건 옷이건 간에 그 공간에 자리한 콘텐츠를 최대한 소비자에게 잘 전달해 판매까지 유도하는 것이 중요해요. 상업 공간 인테리어는 소비자가 이 콘텐츠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들고 판매를 촉구하기 위해 흐름을 짜는 것이 핵심이지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테지만, 김종호 디자이너의 설명을 듣노라니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콘텐츠의 정체성이 확실해야 해요. 음식은 고유의 맛이 있어야 하고, 옷은 독창성이 있어야 해요. 인테리어는 그다음이에요. 만약 어떤 현장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의뢰인 사이에 ‘모던하게 해주세요’, ‘우아하게 해주세요’ 같은 일차원적인 이야기가 오간다면, 그 인테리어는 ‘치장’에 가까워요. 그렇게 만든 상업 공간은 1, 2년은 갈 수 있겠지만, 오랫동안 사랑받기 힘들지요.”

한화 63빌딩 F&B의 실내 건축. 김종호 디자이너는 거칠고 내추럴한 돌을 그대로 옮겨오는 방식으로 이곳의 콘셉트인 날것(로, Raw)을 표현했다.


공간에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이야기’
그렇다면 디자이너가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모든 공간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먼저 있어야 해요. 저는 그걸 이야기 즉, 스토리라고 부릅니다. 지난해 한화 63빌딩 F&B 공간의 뷔페와 중식, 빵집, 꽃집, 푸드코트 공간을 디자인했어요. 이곳의 콘텐츠는 모두 ‘신선한 원재료’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디자인스튜디오에서는 이를 ‘로, 비오리진(Raw, Be-origin)’으로 이름 붙이고 ‘원래 재료가 가지고 있는 맛과 성질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매장’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날것을 뜻하는 ‘로’는 그곳의 아이덴티티를 설명하는 단어이자 이후 디자인의 디테일과 본질을 결정하는 코드가 되었죠. 이 스토리를 소비자에게 전하기 위해 돌과 철, 나무, 벽돌 등을 썼어요. 가공 역시 매끈하게 다듬기보다는 거칠게 마감하는 것으로 날것을 표현했고요. 이 모든 작업은 다시 본질로 돌아가서, ‘신선한 원재료’라는 아이덴티티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데 사용되어요.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스토리’가 이 흐름을 끌고 가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것이지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첫 번째는 좋은 품목이고, 그다음은 이 품목의 특징을 포착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구성, 소재, 연출, 동선 등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이 기본 흐름이다. 이렇게 탄생한 좋은 상업 공간은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시간을 거듭할수록 그 아이덴티티가 명확해진다. “미국의 바니스 뉴욕(Barneys New York)은 인테리어를 자주 바꾸지 않기로 유명해요. 시간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지켜가는 것을 추구하죠.” 생각해보면,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하고 또다시 방문하고 싶은 공간은 ‘본질’을 잘 전달하는 구성과 재료, 디테일이 있는 곳이다. 한화 63빌딩F&B 역시 공간 디자인과 콘텐츠가 잘 맞아떨어져서 정제되고 완성도 높게 만들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디자인스튜디오가 설계한 청담 재클린 뷰티 살롱은 입구의 몰딩 디자인으로 연출을 극대화하고, 품격 있는 매장이라는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잡았다.


주제를 뒷받침하는 재료와 연출
그렇다면 상업 공간을 무엇으로 차별화할 것인가. 콘셉트를 전달하기 위해 디자이너가 사용하는 것은 ‘재료’와 ‘연출’이다. “청담동의 한 뷰티 살롱을 예로 들어볼까요. 이곳의 디자이너 이름은 ‘재클린’이에요. 미국 전 대통령J.F.케네디의 부인 이름이기도 하지요. 청담동에 있다는 고유의 장소성도 있지요. 이곳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스토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살롱, 품격 있는 장소’예요. 클래식한 공간을 연출해 럭셔리함을 표현하고, 하나의 디테일로 강인한 인상을 주었어요. 입구 쪽은 드라마틱하게 벽과 천장을 몰딩으로 하얗게 처리했고, 커다란 거울의 모서리 부분 디테일도 반사되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디자인해 다른 숍과 차별화를 주었어요. 실제로 시공 비용은 얼마 들지 않았지만, 그 효과는 크죠. 숍에 온 사람들은 재클린을 클래식, 럭셔리, 그리고 품위가 있는 공간으로 인식해요. 디자인이 콘텐츠와 결합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화하는 요소가 된 거죠.” 어떤 특정 공간 연출법을 쓰거나 좋은 가구를 두었다고 해서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테리어의 ‘결과’일 뿐이다. 김종호 디자이너는 좀 더 본질적인 공간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상업 공간에 들어서면서 ‘이건 뭐지? 여기는 뭐하는 곳이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연출이에요. 재료 역시 그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골라야 해요. 강남역 GT타워의 경우, 땅에서부터 솟아나는 나무의 역동성과 뿌리를 형상화한 디자인이 건물 외관부터 실내까지 이어지지요. 로비와 지하에 사용된 곡선 역시 이를 형상화한 것이고요. 그 사이에서 나오는 빛을 만들어내기 위해 조명과 금속을 결합해 사용했는데, 사실 금속을 가공해 휘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에요. 하지만 꼭 필요한 곳에 쓴 효과적인 디테일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디자인을 인식시키는 상징성이 있지요.” 재료는 단점을 극복하는 데도 사용된다. 논현 한일카페트 1층과 지하 쇼룸을 리뉴얼하며, 그는 1층에서 바로 지하 매장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바닥을 뚫어 동선을 연결하고, 계단과 파티션을 금속과 유리로 디자인했다. 볕이 들지 않는 지하 매장이지만, 재료가 주는 경쾌한 느낌이 공간을 한층 화사하게 만들었다. 빠르게 변하는 인테리어 트렌드. 상업 공간은 그 변화가 더욱 빠르다. 하지만 1~2년에 한 번씩 바꿔야 하는, 트렌디함만 추구하는 인테리어에서 잠시 눈을 돌려, 판매하는 제품의 본질을 잘 전달하는 매장은 어디에 있는지 한번 찾아보자. 콘텐츠와 결합된 좋은 인테리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장소, 가치 있는 타임리스 디자인으로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는다.

김종호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GT타워. 금속을 구부리고 그 사이에 조명을 삽입해 나무 뿌리의 모습을 표현했다.


디자인스튜디오의 한일카페트 리뉴얼 프로젝트. 지하라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경쾌한 느낌을 주는 유리와 철을 활용했다.

2017년 5월
Editor 정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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